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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쌀’…작은 사랑이 우리 농촌 구하고
<초대수필>水月 서동애 여든여덟 번의 일손과 일곱 근의 땀
 
水月 서동애 기사입력  2017/11/03 [22:04]

 

▲  水月 서동애


흔히 직장인들은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 뭐하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농사는 아니다. 농사짓는 일이 어떤 일보다 힘들고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걸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농사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어느 해 추석날 저녁, 때 아닌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면서 비가 쏟아졌다. 새벽잠이 없는 남편이 아침 일찍 농장에 다녀왔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무슨 일 없느냐고 묻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논에 넘어진 나락()을 묶어 세워야 한다며 부리나케 되돌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모처럼 명절이라 집에 온 아들을 깨우며 논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 뒤를 따라 논으로 향했다. 논으로 가는 길 양옆에는 물기를 머금은 살살이 꽃이 가득히 피어 있었다.

 

논에 도착해보니 쓰러진 벼는 우려했던 것보다 적어 다행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큰 장화를 내밀며 그걸 신고 논으로 들어오란다. 그러면서 누가 소 사러 오라는 연락이 있어 금방 다녀온다며 남편은 일손을 놓고 힁허케 가버렸다.

 

 한동안 해보지 않은 터라 나락 묶을 매끼(벼나 짚을 묶을 때 사용하는 끈)를 준비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막상 나락을 세우려 논에 발을 들어 놓고 벼를 묶어세우려니 쉽지가 않았다. 물이 가득 찬, 차진 논바닥에서 큰 장화를 신는 발을 한 번씩 옮기는 데 여간 힘 드는 게 아니었다.

 

손에 익지 않는 일을 혼자서 버둥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돌아온 남편은, 이제껏 이것밖에 못 하고 뭐했느냐고 대뜸 소리를 지르더니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이며 성큼성큼 논으로 들어온다. 내 딴엔 제대로 허리 한번 펴보지 않고 하노라고 했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그래서 한마디 하려는데 남편은 내 장화 발에 뭉개진 벼를 보고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느냐,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일하기 싫으면 그만해라. 한 포기의 벼도 하찮게 여기려면 밥 먹을 가치도 없다.’는 등 평소에 과묵하기로  소문난 남편의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발을 들며 그깟 벼 한 포기 가지고 이러나 싶었다. 벼 줄기에 스쳐 손목이 쓰리고 아파도 참고 일하는 사람한테 너무 한다 싶어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그러는 남편의 심정이 농심(農心)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 입가엔 슬그머니 웃음이 번졌다. 일을 끝내고 논둑으로 나오니 새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쌀 한 톨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비록 쌀 한 톨일망정 감히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쩌다 마당에 흘린 쌀 한 알도 입김으로 흙을 불어가면서 하나하나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줍곤 했다.

 

옆집에 살던 친구 K네 집에는 보리를 맷돌에 갈아서 보리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봄이면 나물을 뜯어다 죽을 쑤어먹고 쌀밥은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곡식이었다. 그때는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밥도 배부르게 먹고 사는 집들이 흔치 않았다.

 

그러니 그릇을 씻던 개수대에 흘린 밥알도 물에 씻어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쌀은 주식 이상인 생명의 의미를 지녔다.

 

예전에는 쌀만 있으면 부유한 생활이 보장되고 몇 석()의 논을 소지하였는가에 따라서 부를 가늠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부()의 상징인 전답(田畓) 의미도 사라지고 있다.

 

농촌에서 어떤 곡식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쌀이 애물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영농 인구의 고령화로 기계와 일손을 빌리는데, 예전에는 벼로 가져간 품삯을 이제는 현금으로 달라고 하니 갈수록 힘에 부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J 할머니의 깊이 팬 주름만큼이나 한숨이 부쩍 늘어간다.

 

값싼 외국쌀이 들어오는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정부만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농민들도 이제 세계화에 발맞추어 좀 더 나은 쌀을 생산하여 경쟁력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쌀을 지키는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라는 걸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어려운 농가를 지원하지만, 그 혜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유무역으로 다른 어느 분야의 사람들보다 타격이 큰 농민들에게 정부의 대책과 우리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쌀을 사주는 작은 실천 사랑이 우리 농촌을 구하고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되는 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볍씨를 뿌리고 낟알을 걷어 들이기까지 여든여덟 번의 일손이 가야하고, 일곱 근의 땀이 담겨야 한다니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정녕 옳다. 무더운 여름날 농심으로 일군  햅쌀로 지은 고소한 밥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프로필

전남 고흥 출생.

한국아동문학회· 예띠시낭송회 회원

꿈나무들을 위한 좋은 동화 짓기에 열중.

<저서> 에세이집 오동꽃 소녀시집 백리향 연가

 


원본 기사 보기: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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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03 [22:04]  최종편집: ⓒ 시사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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